걷기처럼 단순한 이동 동작에도 팔이 걸음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몸통도 유연하게 기울거나 구부러진다. 찻잔을 집거나 걷는 등 사람의 모든 근육 조직은 동작을 이행하는 데 참여하지만 만약 이런 동작을 보조 움직임 없이 주요 움직임만으로 실행하면 매우 동작이 둔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정상적인 조건과 건강한 상태에서는 늘 보조 움직임이 함께한다. 하지만 간혹 흥분이나 두려움의 감정 때문에 무대 위 배우의 보조 움직임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심해지면 무대 공포로 발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근육이 경직되어 보조 움직임을 할 수 없다. 그러면 결국 매우 어색한 동작을 관객에게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무대공포증'이란 배우가 무대라는 특정 공간으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와 정신적, 신체적인 경직을 느끼는 것이다. 배우가 무대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단지 심리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연기 훈련이 부족했을 때에도 나타난다. 심리적 압박이 생기면 신체적 압박도 생겨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사라진다.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은 배우, 게다가 무대공포증으로 인해 보조 움직임마저 없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그는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는 인형처럼 보일 것이다. 이때 배우는 보조 움직임을 되돌리려 노력할 테지만 그 자리에서 회복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보조 움직임은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배우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의식적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서툰 움직임을 하다가 더욱 어색해지고, 스스로 이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 완전히 정상적인 움직임을 못하게 된다.
메이어홀드는 일상생활과 무대에서 보조 움직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생체역학적 연기법은 아주 작은 동작이라도 온몸을 움직여 보조 움직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표다. 더불어 그는 의미 없는 동작이라도 신체의 모든 기관을 능동적으로 활용해 연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원칙에는 생물학적인 과학의 기초가 담겨있다. 정상적인 생물체의 구조는 전체가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유기체로 살아가며 동작하고 있다.
특수한 기술을 요구하는 동작이라면 특히 연기자에게 보조 움직임이 아주 중요한 움직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텀블링이라면 몸을 회전하는 주요 움직임이지만 팔과 다리의 보조 움직임을 제대로 해야 안전한 동작이 완성된다. 하지만 이때 관객은 큰 틀에서 몸통이 움직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보조 동작들은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의미적 움직임은 말을 대신한다. '서라, 가라, 아니다, 그렇다, 부탁한다, 조용히 하라'는 말 대신 의미적 움직임을 사용하기도 한다. 표현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움직임이다. 이 움직임은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침묵하는 부분이나 무대 전개 상황에서 말을 할 수 없을 때 주로 사용한다. 또 배우가 감정을 크게 표출하고자 할 때나 말로 나타내고자 하는 인상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도 사용한다. 이리 오라는 말을 단순히 언어로 표현하기보다 손짓이나 몸동작을 더하면 그 메시지가 훨씬 강해지는 것처럼 이런 움직임은 선명한 감정의 색체를 지니고 있다. 의미적 움직임은 숨은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떠나라는 말을 하면서도 억양을 통해 역설적으로 떠나지 말라고 표현할 때, 이와 어울리는 제스처를 넣으면 의미가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제스처를 올바르게 연기하는 기술이 있을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이 기술은 강한 감정과 느낌의 영향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생기는 움직임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 더불어 의미적 움직임은 강한 감정 전달의 목적 외에도 나이, 민족, 사회 계층을 특별히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사용한다.
표현하는 움직임은 대상물의 사이즈, 무게, 용적, 표면의 질, 소재지 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출구가 저쪽에 있다"고 할 때 손으로 문을 가리키며 방향 제스처를 한다든가, "우리 엄마가 큰 케이크를 사가지고 오셨다"고 할 때에 손으로 케이크 크기만큼을 표현하는 제스처가 바로 표현하는 움직임이다. 이 움직임은 의미적 움직임처럼 대사가 끝나기 전 또는 그 이후에 행한다. 하지만 언제 제스처를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말을 하는 순간에 표현하는 움직임을 한다면 관객들은 대사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움직임이 있는 곳에 더 집중한다. 관객은 대부분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지켜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각보다 시각적인 지각이 강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대사라면 자신의 동작과 말이 같은 시간대에 이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배우가 무대에서 이동을 하면 많은 관객들은 움직이는 배우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며 관찰하기 때문에 대사의 의미를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반대로 배우의 움직임이 핵심적인 내용을 표현하지 못하고 인상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의미적 움직임이나 표현하는 움직임에 치중할 때도 역시 관객의 집중도는 떨어진다.
팬터마임의 움직임 역시 이와 동일한 기능을 한다. 팬터마임 속 인물의 삶은 주로 논리적인 순서에 따른 의미적 움직임으로 전달된다. 그러나 그 밖의 사람들의 일상이나, 무대에서 표현하는 배우의 행동을 관찰해보면 이동 움직임이나 일상적 움직임, 의미적 움직임, 표현하는 움직임들도 일정한 감정의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감정적 색채는 특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 혹은 배우가 느끼는 특별한 감정과 연결도니다.
배우가 무대동작에 진정으로 매료될 때, 우연한 움직임이 저절로 표출된다. 바로 이 움직임이 관객의 감정에 적극적인 영향을 끼치며, 관객들은 그 순간 본인들이 장면의 주인공이 되여 환영을 느끼고 인물이 처한 운명에 대한 고민과 슬픔, 기쁨을 같이 누린다. 이것이 바로 배우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며 무언의 움직임이 가진 중요한 의미이기도 하다. 연극학 교육과정에서는 무언의 움직임을 제스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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